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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영성 / [복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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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Homepage) 작성일 : 2010-05-19 08:46:28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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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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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영성
(김보록 신부님 글에서 발췌)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예수의 인성 다음으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피조물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원한 걸작"이요, 은총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 마리아는 전인류가 받은 은총보다 더 크고 많은 은총을 받았다. 그러므로 시대를 넘어, 민족을 넘어, 사람들은 마리아를 바라보고 찬양하고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중심으로 모신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역사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각별히 사랑하고 공경하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마리아를 찬양하는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여러 작품들, 마리아께 봉헌된 수도회, 신심단체, 자선사업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리아의 봉사자들 - 이들은 모두, 마리아를 제대로 사랑하고 바르게 공경한다면 누구나 숭고하고 보람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참된 마리아 신심은 마리아처럼 예수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일에 있다. 예수를 외면하여 마리아를 중심으로 모시는 그릇된 신심은 오히려 마리아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진정 참되고 복된 신앙을 살려면 마리아를 항상 사랑스러운 어머니, 힘있는 전구자, 모든 성덕의 스승, 그리고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보호자로서 모셔야 한다.



1.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이유

그리스도인은 마리아를 결코 "숭배"하거나 "예배"하거나 "흠숭"하지 않는다. "숭배, 예배, 흠숭"은 오직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만 바치는 행위이다. 우리는 마리아 를 신격화하지 않고, 그분을 특별히 사랑하고 공경하여, 그분의 전구를 빌고 그분의 행실을 본받으려고 한다.
마리아를 모든 성인 중에서 가장 사랑하고 공경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마리아는 구세주 "예수의 어머니"이다. 예수는 하느님이시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에페소 공의회, 431년)가 된다. 또한 마리아는 "모든 인간의 어머니" (요한 19,27 참조)요, 특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이다. 그분은 예수의 구원사업에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이 모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마리아가 받은 특혜도 역시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이유로 열거할 수 있다. 원죄와 다른 모든 죄가 없고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루카 1,18)것과 지상생활을 마친 후 그 육신은 영혼과 함께 하늘로 올리심을 받은 것이다. 동정이면서 어머니인 것도 마리아가 받은 특은이다. 참으로 마리아는 동정성과 모성이 충만한 분이며 완전한 여성, 완전한 인간이다.

마리아는 이 모든 특혜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과 협력을 다 하였다. 마리아야말로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노력이 가장 조화있게 융합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도 역시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고 본받는 이유라 하겠다.

마리아가 받으신 모든 특혜와 은총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마리아의 모든 공덕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덕분인 것이다. 예수의 근원을 먼저 받은 자는 다름아닌 마리아였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든 중재와 전구와 보호의 힘은 예수의 중재와 전구와 보호와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는 모두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단 한 분의 중재자"(1티모 2,5)이신 예수에게서 나오고, 예수로부터 그 힘과 효력을 얻고 또한 예수의 중재와 전구와 보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예수의 중재와 전구 이외에 새롭고 다른 것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구원사업에 특별히 협력한 마리아께서 그 구원사업의 열매로서의 은총을 중재하고 전구하는 데에 특별히 공헌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2. 마리아께 대한 심신의 내용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구체적 실천내용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마리아를 알고 사랑한다

마리아가 어떤 분인지, 어떤 특혜를 받고, 어떤 생애를 지냈는지 우선 정확히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알지 못하는 분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 다음에 마리아를 자주 생각하여 묵상하고 마리아께 대한 사랑을 기르도록 한다. 마리아의 진정한 모습을 깊이 깨달을수록 사람들은 마리아를 더욱더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2)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공경을 표현한다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공경을 개인, 혹은 공동으로 외부에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성모상 앞에서의 인사와 경건한 자세, 성모 성월과 로사리오 성월 행사, 성모 행렬, 로사리오 기도를 비롯해서 마리아께 바치는 여러 기도, 성가, 시, 글 등등 여러 방법으로 마리아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과 공경을 표현할 수 있다.


3) 마리아의 전구와 보호와 도움을 빈다

마리아의 전구와 보호와 도움의 힘을 확신하여 깊은 신뢰심과 의탁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특히 어려움을 겪을 때 자녀다운 마음으로 마리아께 의지한다. 마리아를 사랑스러운 어머니, 존경하올 지도자, 친밀한 친구로 모시고 항상 친교를 나누어 함께 사는 습관을 기른다.
"마리아께 기도를 바친다"라든가 "마리아를 믿는다"라는 표현은 외교인과 개신교인들에게 오해를 주기 쉽다. 이 표현은 마리아를 "숭배"하고 "흠숭"하고 "절대시"한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의 절대자는 하느님 아버지뿐이시며, 신앙의 대상자는 삼위일체뿐이시다. 다만 "마리아의 전구를 빌고 보호와 인도를 당부하고 마리아와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서의 기도를 마리아께 할 수 있고, 또한 "마리아의 전구와 보호와 도움의 특별한 힘을 확신한다"는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서의 "믿음"을 마리아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성 요한 보스꼬는 말했다. "마리아께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기적이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와의 자녀다운 친교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즐겁고 보람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한다

천상 천하의 모후, 모든 인간의 여왕이며 어머니인 마리아께 자신과 자신의 전부를 특별히 봉헌하여, 그 봉헌을 매일 갱신한다. 이것은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행위가 될 것이다.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한 자는 그만큼 마리아의 자녀로서, 종으로서, 기사로서 헌신하여 활동하고 살아야 한다. 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운동과 신심단체에 가입하여 특별한 봉사나 자선활동을 마리아께 봉헌할 수 있다.


5)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전파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마리아의 올바른 모습을 설명하고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공경을 심어준다. 또한 모든 천주교인들에게 마리아께 대한 참되고 열렬한 신심을 권하고 실천하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진정 사랑할 때 사랑하는 자에 대해서 실천하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진정 사랑할 때 사랑하는 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사랑하는 자가 오해를 받거나 외면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모두가 그 사람을 똑바로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애를 쓰는 방법이다.


6) 마리아를 본받아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산다

마리아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성덕의 모범이다. 마리아의 성덕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마리아 신심의 중심이다. 마리아에게서 다음과 같은 성덕들을 주로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도구로서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명하였으며(루카 1,38 참조), 예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서 속죄사업에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직접 협조하였다. 예수의 어머니로서 모든 일을 오직 예수를 위해, 예수와 함께 행하여 사랑으로서 성화시켰다.
또한 마리아는 생활 속에 늘 관상하였으며, 활동과 기도의 완전한 조화 일치를 이루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극치인 "활동 속의 관상"(contemplatio in actione), 또는 "관상 속의 활동"(acta in contemplatione)의 체험은 바로 마리아의 인격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핀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사랑의 첫째가는 계명)과 이웃에 대한 사랑(사랑의 둘째가는 계명)을 하나의 사랑으로 통합하였다. 하느님이시오 인간이신 예수를 당신의 친아들로서 사랑한 마리아의 그 사랑이야말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완벽한 일치가 아니겠는가?
마리아는 "하느님의 신부, 어머니, 종"이라고 불릴 만큼 하느님과 가장 심오한 혼인적 일치를 이루었으며, 동시에 엘리사벳 방문과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볼 수 있듯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미리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순수한 사랑을 실행하였다.
마리아에 있어서 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될만큼 순수하고 숭고했으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그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될 만큼 구체적 열매를 맺은 것이었다. 마리아야말로 초자연적 사랑과 인간적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한 분이다.
예수를 기르고 사랑하였던 마리아는 모든 부모의 모범이 된다. 마리아는 모든 어머니의 이상이다. 또한 남편 요셉을 순수한 사랑으로 돌보심으로써 모든 부모의 모범이 된 마리아는 모든 아내의 이상이다. 이리하여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성가정을 이루어 모든 가정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어머니이며 동정인 분은 세상에 마리아뿐이다. 동정성은 단지 몸과 마음의 순결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적 동정성은 "딴 생각없이"(1코린 7,35)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의 갈라짐"(1코린 7,34)이 없이 배타적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진 상태를 뜻한다.
이 의미에서 마리아는 완전한 동정이며, 모든 동정자의 모범이 되고, 또한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의 이상이 된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가득찬 마리아의 이 긍정적 동정성이야말로 오늘날 사랑의 결핍과 성이론의 혼란에 허덕이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지없이 희망과 용기를 복돋아줄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약속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겼다. 구세주의 어머니로서의 생활은 결코 안이하고 아무 어려움이 없는 생활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고생과 심한 고통을 겪으셔야만 했다. 시메온의 예언, 에집트에서의 피난생활,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잃으심, 예수의 수난과 죽음 등등, 그러나 마리아는 낙심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고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봉헌하였다. 마리아와 같은 깊은 신앙, 확고한 의탁, 그리고 고통을 감수함을 그리스도인은 배워야 할 것이다. 마리아만큼 겸손하고 숨은 생활을 한 분은 없다. 그리스도교적 겸손은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루카 1,46-55)는 마리아 자신이 "여종의 비천한 신세"임을 인정하면서도 "온 백성이 자신을 복되다 할" 것임을 시인하여 그것을 "하느님의 덕분"이라고 선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도, 은혜로움도 그대로 인정하여 은혜로움을 하느님께 돌려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겸손이다. 이 "마리아의 노래"는 "겸손의 찬가"이므로 마리아는 모든 이에게 겸손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숨은 생활에서 일상과 평범을 성화한 분도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사람 앞에서 강론한 적도, 기적을 행한 일도 없었으나, 그분의 생각 하나하나, 말씀 하나하나, 그리고 일거일동이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으로 이루어졌기에, 그 모두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최고의 봉헌물이 되었던 것이다.

마리아를 본받음은 마리아가 지녔던 자세와 같은 자세를 지니고, 그분과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핵심은 마리아처럼 생각하고, 마리아처럼 말하고, 마리아처럼 사랑하고, 마리아처럼 사는 일이다.



3. 마리아께 대한 심심의 의미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의미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어머니의 필요성

사람의 생애에 어머니는 꼭 필요하다. 사람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가장 귀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자는 바로 어머니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도 어머니가 꼭 필요하다. 신앙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영적 어머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어머니 없는 아이가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듯이, 영적 어머니 없는 그리스도인은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어린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듯이 영적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어 한다. 하느님은 사랑의 이 본능적 욕구를 잘 아시고 신앙에 곁들여 영적 어머니도 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마리아께 대한 사랑안에 인간의 이 근본적 욕구를 채워가면서 복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지상적 어머니는 자식이 자라는 대로 자식과의 관계가 멀어지지만, 천상적 어머니는 신앙인이 자라날수록 그분과의 관계가 가까워진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영적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숨쉬면서 참된 가정을 이룬다. 어머니가 없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무언가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어머니를 외면하는 그리스도교 가족은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2)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Per Mariam ad Jesum)

예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에게 오셨듯이,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께 갈 수 있다.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라는 공식은 교회의 2천년 역사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의 주측을 이루어왔다. 이 공식의 참뜻은 우리와 예수의 "직접적 일치"를 마리아가 "옆에서" 도우신다는 뜻이며, 결코 우리와 예수 사이에 마리아가 끼어들음으로써 중재하시어 우리와 예수를 간접적으로 일치시키신다는 뜻이 아니다. 마리아와의 일치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요 예수와의 일치야말로 목적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에 마리아는 2차적이고 부수적 존재이지만 예수는 중심적이고 절대적 존재이시다.
다만 마리아는 예수와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예수와 합치한 분이므로 마리아와 일치할수록 예수와 일치하게 되고, 예수와 일치할수록 마리아와 일치하게 되는 것은 진실이다. 마리아를 예수와 독립된 분이나 분리된 분으로 생각할 수 없으므로, 마리아를 사랑한 만큼 예수를 사랑하게 되고, 예수를 사랑한 만큼 마리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마리아께 대한 신심의 핵심은 마리아처럼 예수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를 생활의 전부를 삼아 사는 데에 있다. 예수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생활의 전부로 삼는 데에 마리아만큼 훌륭한 모범이 되신 분은 없고 마리아만큼 큰 도움을 준 분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마리아를 본받아, 마리아의 도움과 전구로 예수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리아는 예수께 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


3) 구원의 표적이신 마리아

마리아는 예수의 구원사업의 첫째가는 열매이며, 구원받을 교회공동체의 모형이다. 마리아의 부활과 승천과 천상 영광안에 전인류의 부활과 승천과 천상 영광이 미리 실현되었다. 사람은 마리아의 모습 안에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보고 희망과 기쁨으로 채워진다. 마리아는 참으로 구원받았고 또 온전한 구원을 받게 될 교회공동체의 전형이요 전표이다. 구원을 이루려면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마리아는 당신의 생활로 보여준다. 하느님의 은총에 어떻게 협력하여 노력해야 하며, "하느님 체험"과 "세상 체험"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신앙생활"과 "인간적생활"을 어떻게 통합하고 "기도"와 "활동"을 어떻게 하나의 체험으로 합칠 것인가를 마리아는 당신의 모습으로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이 부모로서, 부부로서, 가정인으로서, 동정녀로서, 사회인으로서, 자기 본분을 어떻게 수행하여,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어떻게 하나의 사랑으로써 실천해야 하는가를 마리아는 당신 사랑의 삶으로 알려준다.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원한 여성은 우리를 하늘 높이 인도한다." "영원한 여성"은 바로 마리아이다. 마리아의 아름다움, 마리아의 힘, 그리고 마리아의 사랑. 얼마나 숭고하고, 얼마나 크고, 얼마나 깊은 것인가! 참으로 마리아를 가까이 모시고 마리아와 함께 신앙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복되다. 그리스도인이여, 진정 보람찬 신앙과 행복한 삶을 살려면, 부디 어머니 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여라.




[5월 20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7,20-26>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



[오늘의 묵상] 운전 학원에서 도로 연수를 전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학원에서는 자상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 어느 날 그의 아내는 ‘어차피 할 것이라면’ 하는 마음에서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첫날부터 부부는 싸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상냥하다는 남편이 아내를 윽박지르고 무시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아내의 말입니다.
“더 잘해 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거지.”
남편의 말입니다.
“그게 안 돼. 왜 당신에게는 화부터 먼저 나는지 나도 알 수가 없어.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데, 당신에게는 못 참겠어. 정말 미치겠어.”

아내와 자신은 ‘하나’라는 무의식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운전 잘하는 ‘내가’ 운전 못하는 ‘다른 나’를 꾸짖는 것이지요. 일치는 이렇듯 어렵습니다. 알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과 지식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늘이 개입해야 가능해집니다. 일치 또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일치하여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 되려는 노력에는 언제나 힘을 보태 주십니다. 일치는 내 쪽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이 바뀌어야 내가 바뀔 것 같소.’ 이래서는 안 됩니다. ‘내가 바뀌어 당신에게 가겠소.’ 이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힘이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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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예수성심 성월(6월)
마리아, 자비의 어머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 [복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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