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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으로 제일 많이 떨어지는 영혼의 죄는? / [복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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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Homepage) 작성일 : 2010-05-13 09:19:32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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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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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지옥으로 제일 많이 떨어지는 영혼의 죄는?


음란의 죄에 꼭 따라다니는 벙어리 마귀
( "영혼의 聖藥" 중에서 / 가톨릭출판사 )


벙어리 마귀, 무언(無言)의 마귀란 것은 곧 음란함의 마귀, 사음의 마귀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

사음죄(邪淫罪)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제6계 (간음하지 마라)와 제9계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가 금하는 모든 죄를 말한다. 음란함은 매우 큰 죄로서 하느님이나 사람 앞에서 가장 추잡하고도 가증스런 죄악이다. 이 죄를 범한 사람은 짐승의 세계로 떨어져도 시원치 않다. 이 죄는 다른 많은 죄를 덩달아 범하게 하는 원인이 되어, 현재나 미래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을 받는다.

성경은 이 음란의 죄는 가장 추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극도로 악한 범죄요, 가장 싫고 꺼리는 행위이므로 들먹이기조차 거북한 추잡하고도 무서운 죄악이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런 죄를 범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교부들도 이구동성으로 지옥으로 제일 많이 떨어지는 영혼은 사음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하기를 마귀는 교만으로 지옥에 떨어졌고, 사람은 사음으로 지옥을 채운다고 했다. 성 알퐁소는 지옥에 빠지는 신자는 대개 사음죄 때문이요, 적어도 사음죄 아니고는 지옥에 빠지는 사람이 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했다.

어째서 그러할까? 중요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음란함의 죄는 매우 범하기 쉬운 죄요, 둘째는 이 죄는 매우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범하기 쉬운가 하면 사음이 죄가 되는 불결한 행위일 뿐 아니라 그 극단에 이르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눈짓, 고약한 책, 추잡한 노래, 더러운 몸짓, 악한 이야기, 방탕한 교제와 연애뿐 아니라 마음으로 즐기는 것까지 모두 사음죄가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죄는 고치기 어려운가? 이 죄를 한번 범하게 되면 자연히 계속해서 범할 쾌락에 빠지게 되고,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고칠래야 고치기 어려운 관습의 사슬로 스스로 자기 몸을 묶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죄로 떨어지는 사람이야말로 불행하다!

그런데 고해가 어째서 이 무서운 사슬을 끊는 데 효력이 없을까? 그 고해가 바른 고해였다면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되겠지만 바로 여기에 벙어리 마귀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 마귀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사람의 입을 막고 죄를 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죄를 바로 고해하면 의심 없이 사함을 받고, 또한 음란의 악한 야욕을 차츰 눌러 이길 수가 있다. 왜냐하면 고해는 악한 야욕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무언의 마귀는 어둠을 좋아한다. 그러나 고해는 빛을 가져오고, 이 빛으로 마귀를 쫓으며 죄인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죄가 얼마나 더럽고 고약한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마귀는 있는 힘을 다하여 바른 고해를 못하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이 꾐에 걸려든 사람은 대개 모고해를 하기 시작하고, 한번 모고해를 하면 그 다음은 계속해서 모고해, 모령성체까지 하게 된다. 하느님은 이런 죄인을 아주 버리시지는 않지만, 음란함의 죄의 버릇이 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을 멀리하고, 하느님을 생각지도 않으려 하고, 점점 죄가 깊어지면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사음은 참혹한 죽음의 어머니라고 불리운다.

어느 성인이 말하기를 “부정한 생활은 부정한 죽음을 부르나니 그 이유는 흔히 음란의 버릇이 든 사람은 임종 때도 고해를 잘 하지 않으려 하며, 죄를 통회하여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못하여 고해하기를 꺼리고, 해봐야 모고해를 하여 스스로 하늘나라를 잃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라고 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른바 종교개혁가라는 마르틴 루터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사였다. 그는 불결한 사랑 때문에 수도원에서 나왔고, 모교를 떠나 이교를 세워 신자들에게 매우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고, 마침내 그 불결한 사람들 속에서 죽고 말았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밤 루터는 애인 가타리나와 함께 어떤 여관 창문 곁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타리나는 맑고 푸르고 드높은 하늘에 무수한 별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쳐다보고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못해 그에게, “마르틴! 저 하늘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오 가타리나! 하늘은 곱고 아름답지만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이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자기가 죄악에서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잠깐 그 여관에 머무르다가 거기서 무서운 실망 끝에 죽고 말았다 한다. 불결한 생활은 불행한 죽음을 부른다!

또 다른 종교개혁가라던 칼빈의 상속자이며 다른 종교의 기둥이라고 불리우던 테오도르 베사가 중병에 걸렸을 때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이 그를 방문했다. 성인은 열심히 그가 다른 종교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돌아오도록 권하고 갖은 수단을 다했다. 테오도르는 성인의 따듯한 권유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때때로 깊은 한숨만 쉴 따름이었다.
할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성인이 그에게 물으니 테오도르는 겨우 윗몸을 일으키더니 옆에 숨겨놓은 침대의 휘장을 잡아당기며 그곳에 있던 여성을 가리키면서 “제가 회개하여 영혼의 구함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저 여성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또 다시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보라! 이런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죄악에서 떠나지 못한다.

또 무서운 다른 이야기 한 가지를 들어보자. 어떤 읍내 향락과 허영에 빠져 춤에 미친 계집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두어 차례 회개하라는 권면도 받았지만 교만한 마음으로 그것을 비웃을 뿐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명랑하고, 재빠르고, 활달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어머니는 여러 사내가 딸의 곁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고 매우 만족하며 그 중에서 좋은 사윗감을 골라 결혼만 시키면 딸도 침착해지리라 생각하고 딸의 방탕한 생활을 마음대로 하라고 맡겨두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천박한 생각으로 딸의 참된 행복을 그르치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 도대체 그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중병에 걸렸다. 간병하러 온 이웃집 착한 부인이 신부를 청해 갖은 성사를 받고 임종 준비를 하라고 권했더니 그 딸은 고집을 피우며
말하기를, “무엇이라고요? 이렇게 젊고 아름다움 제가 죽을 것 같습니까? 저는 안 죽으렵니다. 어떻게든 저는 죽지 않아요.”라며 자신만만했다. 결국 신부가 와서 매우 위중하니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라고 권했다.
“죽다니요? 제가 죽어요? 저는 살고 싶은데요. 저는 죽기 싫습니다!”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그래도 신부는 열심과 인내로써 권하는데, 점점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흐려짐을 깨달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용을 쓰며 맹수처럼 소리지르기를,
“아, 저는 아무래도 죽을 것이니까! 마귀야, 네가 와서… 네가 내 영혼을 가지고 가라…”고 말하더니, 홑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실망하면서 그만 숨지고 말았다. 아, 참으로 불결한 생활은 불행한 죽음을 가져온다!

또 한가지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어떤 신사가 자기 집에 나쁜 계집을 데려다 놓고 함께 살았다. 친구들이 그 계집을 쫓아내라고 권해도 그는 항상 거절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두 남녀는 갈라지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겼다.
그 불쌍한 신사가 중병에 걸려 거의 임종에 다다르게 되었다. 신부가 오고 마지막 성사를 베풀 준비가 되었다. 신부는 간곡하게 권하여 선종하도록 노력했다. 신부의 열심과 간곡한 권면에 못이겨 그 신사는 아주 회개하는 것처럼 신부에게, “신부님! 기쁜 마음으로 당신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나쁜 생활을 청산하고 올바른 고해를 해서 선종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신부는 너무나 반가워서, “아, 그렇습니까! 착한 신자들과 같이 당신도 최후 성사를 다 잘 받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예, 신부님이 주시면 기쁘게 다 잘 받겠습니다.”라고 그는 태연히 말한다.
“그러나 요전까지 같이 지내던 그 여성을 아주 버리지 않으면 당신은 성사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신부가 따지니, “오, 신부님! 그것은 안될 말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딱 자른다.
“어째서 안돼요? 할 마음만 있으면 안될 일이 아닌데요. 당신이 선종하고 싶다면 그 여자를 버리지 않고는 절대로 안됩니다.”라고 신부도 강경하게 말했다.
“늘 같은 말입니다. 안됩니다. 그 여성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아무래도 죽을 모양인데, 죽는 마당에는 그 여자와 아무래도 헤어져야 할 것 아닌가요? 잘 생각해보세요!”
“안됩니다. 신부님! 그것만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대로는 당신 죄를 사해줄 수가 없소. 다른 성사도 줄 수 없고, 당신은 하늘나라를 잃고 지옥으로 가는 수밖에 없소.”
“안됩니다. 신부님!”
“여보시오. 안된다, 안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명예를 좀 생각해보시오. 기절한 그대로 죽으면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무어라고 하겠나요?”
“안됩니다. 안돼요!” 하면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그 소리만 중얼거리다가 끝내 그 여자를 곁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여자를 끌어안은 채 죽고 말았다. 아! 불결한 생활은 불행한 죽음을 가져온다! 참으로 무섭지 않느냐? 그러나 무슨 죄든지 떠나려면 떠날 수 있는 것이요, 떠나기 싫으면 할 수 없는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부정한 여성의 집을 드나드는 습관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말렸지만, 그는 늘 할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여느 때처럼 그 여자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뜻밖에 몽둥이로 얻어맞았다.
그는 그 날부터 이상하게도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았다. 전에는 절대로 할 수 없다던 것이 이제는 절대로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할 수 없다던 것을 몽둥이로 변화시킨 것이라고 성인은 말했다.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몽둥이로는 되거늘, 하물며 무슨 죄든지 떠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 소리요,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란 점도 우리는 잘 알았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음란함의 죄


사음죄(邪淫罪:음란한 죄)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음란한 짓은 착한 일을 할 힘을 빼앗는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기운 때문에 당대의 호걸로 불리웠던 삼손은 불결한 사랑에 빠져 애인 데릴라의 노리갯감이 되어버렸다. 그는 세 번이나 그녀의 꾐에 빠져
마침내 원수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음란한 짓은 머리를 둔하게 한다. 임금들 중에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이 이교의 여성에게 매혹되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은혜를 자기에게 주신 하느님을 멀리하고 결국 이교에 빠지고 말았다.

음란한 짓은 마음을 썩게 한다. 임금 가운데 가장 열렬한 그리스도 신자였던 영국의 헨리 8세는 앤 볼렌과 불결한 관계를 맺고 아내를 버려 가톨릭 교회를 배반하고 영국을 이교 나라로 만든 뒤에 파문을 받아 죽고 말았다.
음란한 짓은 신앙을 잃어버리게 한다. 신자들 중에 신앙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개 사음죄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젊은이들이 기도를 잘 하지 않고, 교회에서 하는 성사를 등한히 하고 차츰 성사도 잘 안 보며 성당에서 멀어지는 것은 대개 음탕한 말, 소설, 영화에 빠지고, 나쁜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여, 가서는 안 될 집에도 드나들고, 사귀지 말아야 할 여성과도 사귀어 쾌락과 방탕한 생활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잘 아는 의사를 만났다. 나는 그가 신자의 본분을 잘 지키지 않으므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나를 결혼시켜주시오. 그러면 좋은 신자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까닭은 사음 때문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이 밖에 음란한 짓은 가장 잔혹한 죄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사음은 건강을 해치고 체력을 떨어뜨려 목숨을 짧게 만든다. 세상에 사음으로 인해 허약해진 사람, 병자, 애늙은이, 폐병환자, 정신병자, 반신불수, 임질, 매독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형아, 눈 멀고 코 빠진 이, 언청이, 불구자, 바보, 이런 것들은 거의 모두 부모의 사음죄의 결과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버림 받는 아이들과 고아원이 많아지는 것 또한 사음이 가져오는 악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처녀나 과부가 아기를 낳아 눌러 죽이는 무서운 죄악도 사음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남아프리카에는 피를 먹는 박쥐가 있다. 이 박쥐는 동물의 피, 특히 말의 피를 잘 빨아먹는다고 한다. 어떤 때는 잠자는 사람의 피까지 빨아먹는다. 이 놈은 빨아먹은 피로 배가 부르면 빨던 구멍을 그대로 두고 달아나 버리므로 짐승이나 사람은 죽고 만다고 한다. 사음은 이렇게 피를 빨아 먹는 박쥐와 같으니, 사람의 피를 빨아 기운을 없애고 목숨을 앞당긴다.

음란한 짓은 촛불과 같다. 타는 초는 끄지 않으면 다 타고 마는 것처럼 음란한 짓도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사람의 목숨을 모조리 녹여버리고 만다. 젊은이들 중에 이런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건강과 명예와 쾌활과 순결을 잃어 보통 사람보다 빨리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은 장미꽃의 향기를 맡는 줄로 알지만 거기에 가시와 독이 있는 줄 모른다. 장미꽃 이야기가 나왔으니 적당한 실례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자.

로마 황제 에리오 가바로는 자기 밑에 있는 장군과 신하들이 반역하려는 음모를 미리 눈치 채고 먼저 손을 써서 그들에게 단단히 벌을 줄 계획을 세워 극비리에 필요한 준비를 해놓고 모든 음모자를 엄청나게 잘 차린 만찬회에 초대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 거나하게 취한 채 즐거운 노래와 춤에 푹 빠졌을 때 뜻하지 않은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그 방의 천장이 저절로 열리더니 상쾌한 향기가 나는 장미꽃들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뜻밖의 일에 기뻐하고 열광하며 “에리오 가바로 만세!”를 부르며, 그 장미꽃을 손에 손에 집어 들고, 향기를 맡으며 가슴에 꽂기도 하고, 손뼉을 치며 몇 번이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는 동안에 황제는 아무도 모르게 방에서 빠져 나갔다. 황제가 나간 뒤에 방문이 굳게 잠겼다. 장미비는 점점 심해져서 물동이를 엎은 것처럼 쏟아졌다. 책상과 걸상 모두 장미비에 잠겼고 사람들도 모두 장미꽃 바다 속에서 헤맸다. 그들은 매력적인 꽃향기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져, 한 사람, 두 사람 꽃무더기 위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문이라는 문은 모조리 잠겼고, 창은 높은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창문마다 철망이 쳐져 있지 않은가! 그때서야 그들은 황제의 계획적인 암수에 걸린 줄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결국 아름다운 장미꽃 속에 묻혀, 그 향기에 질식해 죽고 말았다.
이것은 사음의 쾌락에 빠진 사람들이 밟는 길과 같다. 한창 나이의 젊은 이들이 사음의 장미꽃, 마음을 끄는 그 향기에 도취하여 “사랑! 사랑!”을 부르며 그 꽃향기에 질식하여 넘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불행하다! 그 애욕, 아니 그 사욕은 머지않아 자신을 죽이는 독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나는 사욕을 탐하고 있는 건장한 젊은이 한 사람을 알았다. 그는 17 살때 무서운 공포증에 고민하다가 죽었다. 그의 죽음을 본 사람은 누구나 겁에 질렸다. 그의 눈이 얼마나 푹 꺼졌든지 친척들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흉측했다. 방에 들어간 사람마다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흉측하게 죽은 얼굴을 처음 본다.”며 놀랐다.

사음죄에 빠진 또 한 젊은이도 그처럼 참혹하게 죽었다. 시체는 퉁퉁부어 고약한 냄새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래서 친구들 중에 용감한 사람들이 예정보다 빨리 장례를 치르려고 시신을 옮기려 했으나 도저히 악취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할 수 없이 소달구지로 시신을 운반했다. 그가 죽었던 방은 두서너 차례 소독하지 않고는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악취가 배어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불결한 죄를 자주 범한 어느 여성이 보기에는 열심한 신자처럼 잘 죽은 것 같았다. 어머니와 동생은 깨끗한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꽃으로 시체를 잘 꾸몄다. 최후 고별식에 모인 친구들이 관례대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출관예절을 할 셈으로 침대 위에 눕히고 손에 십자고상을 쥐어주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십자고상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졌다. 친구들은 몇 번이나 다시 쥐어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 더러운 손에 쥐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들인가! 그러면 이런 죄에 빠진 사람들은 건져낼 방법이 없을까?
그런 죄를 회개시키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철석같은 결심이고,
둘째는 죄를 범할 기회를 피함이요,
셋째는 자주 성사를 받는 일이다
.

첫째로 철석같은 결심을 해야 한다는 실례를 들어보자. 성 아우구스티노는 30세까지 방탕한 생활을 해오다가 눈이 열려 지금까지 생활을 청산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 젊음의 쾌락을 버린 채, 신부가 되고 주교가 되었을 뿐 아니라 큰 성인이 되었다. 그 분은 교회의 유명한 박사로 존경받고 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도 30세 때 종전의 세속생활에 싫증을 느껴 단단히 결심하고 어느 수도원의 문을 두드려 거기서 엄한 보속을 하면서 자기 죄를  깨끗이 청산한 뒤에 예수회를 창립하여 교회의 빛나는 성인이 되었다.
아브룻도의 귀족 리레스 성 가밀로도 젊었을 때 이 세상의 향락과 방탕에 빠졌다가 25세에 수사가 되어 자신을 온전히 예수와 마리아에게 바쳐, 남은 생애를 병자와 임종 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
통회의 성녀 막달레나도 그렇지 않았던가! 골드나의 성녀 마르가리타도 사욕과 기만의 그릇이었으나 하늘나라의 화분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저 성인 성녀들의 굳은 결심은 자신을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했던 것이다. 그런 결심이 없었던들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둘째로 죄를 범할 기회를 멀리하여 죄를 피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성인들의 모범을 본보기로 하자.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어떤 탑 속에 갇히어 음탕한 여성에게 유혹을 받았을 때 그녀를 쫓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화로에 타고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이것으로 지진다.”라고 소리지르며 그 여성을 내쫓고 나무 끝으로 벽에 십자가를 긋고 그 앞에서 기도했다한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이 18세 때 파도아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다. 품행이 좋지 못한 젊은 여성이 악의를 품고 그를 끌어안으려 했다. 성인은 그때 어떻게 했던가! “사탄의 심부름꾼아, 빨리 가라”고 말하면서 침을 뱉었다 한다.
젊은 디오스고로는 자신의 신앙을 버리도록 하려는 적의 온갖 계교를 물리쳤지만 최후에는 그를 유혹하려는 여자에 의해 장미의 침대에 붙잡혀 묶이게 되었다. 이 경우에 그는 어떻게 했던가? 그는 천주께 기구하고 자기 혀를 깨물어 그녀의 얼굴에 피를 뱉었다. 순교자의 피를 뒤집어 쓴 그 음탕한 여자는 무서워서 달아났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한다. 그런데 혹시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저분들은 성인들이니까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냐?”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저분들도 성인이 아니었고 우리와 똑같은 약한 인간으로서 범죄를 할 것이냐, 이 기회를 단단히 피하기로 결심할 것이냐 하는 두 갈래 길에 섰다가, 용감하게 그 유혹을 이겨 결국 성인이 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비록 성인은 아니지만 신자된 것만으로도 초성의 힘으로 능히 죄를 범할 기회를 끊을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떤 처녀가 멋대로 살아가는 어느 군인으로부터 음탕한 말로 가득 찬 엽서 한 장을 받았다. 그녀는 그 엽서를 봉투에 넣어 군인에게 돌려보내며 엽서 뒷장에 이렇게 적었다. “신자인 저에게 맞지 않는 그대의 말이 군인인 그대에게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또 어느 처녀는 약혼한 남성으로부터 멋대로 쓴 편지를 받고 “나는 정결하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기로 하여 오늘부터 그대와 인연을 끊나이다.”라고 말했다.
오래 전에 토리노시에서 생긴 일이다. 어느 전차 정류장에서 많은 승객 가운데 어느 방탕한 젊은이 한 사람이 얌전한 아가씨에게 무례한 짓을 했다. 그 아가씨는 성이 나서 뒤돌아보며
“내가 성낸 이유를 알고 싶소?” 하며 그의 따귀를 보기 좋게 한 차례 후려갈겼다. 그는 “아니 여보시오! 잘 알았소” 하면서 수건으로 코피를 닦으며 슬그머니 달아났다.
모든 사람이 이 아가씨들처럼 용감하면 세상에는 더럽고 짓궂은 청년들이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는 모든 죄의 어머니인 게으름에 주의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죄에 떨어지기 쉽다. 심심하게 지낼 때 자주 사음의 마귀가 유혹한다. 그 유혹을 당하는 사람은 자칫하면 죄에 빠진다. 그러니 게으름은 모든 죄의 근원이요, 어머니로 불린다.

셋째로 사음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주 성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고해성사는 매주일 또는 한 주일 건너서 하든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해야 할 것이다. 영성체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받아야 한다. 성체성사로 벙어리 마귀를 이기며, 그 올가미를 물리칠 수 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고,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 성체성사다. 성 필립보 네리와 성 돈 보스코는 자주 성체와 고해를 받는 사람은 사음죄를 계속 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사제들과 수사, 수녀들의 정결을 믿지 않는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저들이 순결과 정덕을 지킬 수 있는지 믿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성사의 위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주 고해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로 영혼을 깨끗이 씻고, 자주 영성체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살을 먹어 거룩하게 일치되는 그 비법을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에 어느 젊은 변호사가 친구였던 어떤 신부에게 농담 비슷하게, “제가 신부님의 신앙도 믿고 신부님의 희생정신도 믿지만, 신부님의 정결은 믿을 수가 없소.”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묘한 질문을 받은 신부는 대답하기를, “당신도 실행해 보세요.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무엇을 말씀입니까?”라고 변호사가 묻자, 신부는 “자주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아보란 말이오!”라고 대답했다.
변호사는 그 말에 별로 호기심을 느끼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다가는 또 다시 조금 전에 말한 문제로 돌아갔다. 그럭저럭 반년이 지났다. 그 변호사는 신학생 복을 입고 신부 앞에 나타나더니, 또 1년이 지나서는 신부가 되었다. 그는 유명한 선교사가 되어 사제들의 정결을 변호하는 성직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신부의 말대로 실행했으며, 그 신비로운 힘을 성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정결은 여러 가지 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백합꽃과도 같은 존재다. 정결은 사람을 하늘나라로 끌어올리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값진 보배를 지키는 사람으로 만든다. 정결한 사람은 항상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그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다. 정결은 영원한 구령(救靈)의 희망과 굳센 자신을 간직하게 한다. 정덕을 지키는 사람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 모차르트는 25세 때 큰 명성을 날렸다. 1881년 1월 27일 밀라노에서 그의 생일 잔치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그는 이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주님 앞에 맹세하노니,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정결하지 않은 일이나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성공이요, 나의 광명(光明)의 비밀이다."
그는 정덕을 지켰기에 자신의 힘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처럼 자신있게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5월 14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5,9-17>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의 묵상]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말을 바꾼다면, ‘내가 너희에게 관심을 가지듯이 너희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관심은 돌보는 행위입니다. 꽃나무를 가꾸듯 서로에게 ‘생명력’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의 관심이 있기에 세상 만물은 생기를 띠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장미의 향기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안다.’고 답하자, 말로 표현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표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분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분을 닮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 ‘물들어 가는’ 것이지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감동시켰듯이 너희도 서로 감동을 주며 살아라. 내가 너희를 용서하였듯이 너희도 용서하며 살아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입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랑’을 제자들에게 남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명하고 계십니다.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감동과 용서를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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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2010.5.13(목) - 2010.05.16(일)
파티마에서의 성체 기도 / [복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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