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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묵주기도의 성인들 / [복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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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Homepage) 작성일 : 2010-05-04 10:11:11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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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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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묵주기도의 성인들
(스테파노 마넬리 신부)


성 도미니코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내려오는 묵주기도는 은총을 얻는 뛰어난 방법이며, 영적인 성숙을 얻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또한 이 축복받은 구슬들은 내적인 삶을 위한 고귀한 양식이다
.

지난 8세기 동안 성인들은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이 묵주기도를 바쳤다. 성인들은 감실, 십자가, 복음서, 성무일도와 나란히 같은 위치에 묵주를 두었다. 우리는 브렌지시의 성 로렌스, 성 베드로 까니시우스, 성 로버트 벨라르미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그리고 성 알퐁소 리구오리와 같은 교회 박사들의 책상 위에서도 그리고 성 찰스 보로메오, 성 필립보 네리,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그리고 다른 많은 성인들과 같은 열렬한 사도들의 손에서도 묵주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성 이냐시오 로욜라와 렐리스의 성 카밀루스와 같은 거룩한 창설자들에게서도 그들의 목에 걸려있는묵주를 발견한다. 목에 묵주를 걸고 있었던 또 다른 성인들은 아르스의 거룩한 보좌 신부 성 요셉 카파소와 같은 사제들과 성녀 마가렛, 성녀 벨라뎃다, 성녀 베르델라와 같은 수녀들, 그리고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카, 성 요한 벨크만스와 같은 젊은 분들이다. 그리고 비탄의 어머니의 성녀 가브리엘라가 있다. 선택된 이들의 이 영광스러운 습관은 성 도미니코, 성녀 마리아 고레티,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성 막시밀리안 콜베에 의해서도 실천되었다.
이 거룩한 분들은 묵주기도를 승리를 얻기 위한 무기로써 영적인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공로의 사슬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들 자신들과 다른 영혼들을 위한 은총의 목걸이를 얻기 위해 사용했다.

성 비오 10세의 생애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날 그에게 목에 묵주를 걸고 있는 한 소년을 바라보신 후 그에게 "얘야, 나는 네가 청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묵주기도에 의지하여 청하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라고 하셨다. 이 간단한 말에서 우리는 성 비오 10세께서 우리에게 묵주기도가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한 묵주기도로 얻을 수 있다." 은총과 위로, 회개와 성화, 도움과 격려, 용기와 기쁨 등 이런 모든 것들을 묵주기도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복자 알라노와 묵주기도의 구조

현재의 묵주기도의 구조는 성 도미니코의 아들인, 로체의 복자 알라노의 덕을 입고 있다. 그는 거룩한 묵주기도의 열성가들을 위해, 그가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로부터 받은 약속들을 우리를 위해 기록했다. 묵주기도의 약속들은 영원을 위한 구원의 약속들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특별한 은총과 위험 중에서의 보호와 특별한 도움, 영적인 삶에 있어서의 진보, 그리고 천국에서의 특별한 영광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 약속들의 은혜를 받느냐, 못받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의심스럽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위대한 신비가이면 교회 박사인 성 알퐁소 리구오리는 그의 영원한 구원을 거룩한 묵주기도에 대한 헌신과 연관지었다. 그가 나이가 들었을 때, 어느날 저녁 그 자신이 묵주기도를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도와주고 있던 형제에게 물었다. 그 형제는 성인이 묵주기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인은 이렇게 주장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이예요? 확실해요? 당신은 나의 구원이 이 기도를 바치는데 달려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라고.

성흔을 받은 가르가노 산의 사제인 비오 신부님이 한번은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누군가에게 묵주를 주었다. "나는 나의 보물을 당신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것의 진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는 연옥을 텅비게 만듭시다."

또한 어느날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그가 묵주기도를 시작했을 때 황홀경에 빠져 연옥을 보았다고 썼다. 연옥은 영혼들이 불꽃에 의해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거대한 밀폐된 지역처럼 보였다. 성녀 데레세가 첫 번째 성모송을 외웠을 때 그녀는 이 영혼들 위로 갑자기 터지는 신선한 물줄기가 쏟아져내려 그 영혼들을 위로해주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두 번째의 성모송을 외웠을 때도 그러했고, 세 번째도 계속 그랬다. 그래서 성녀 데레사는 거룩한 묵주기도가 연옥에 있는영혼들에게 대단한 도움이 됨을 깨닫고, 묵주기도 하기를 결코 멈추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강 위와 같은 이유로 성 알퐁소는 "만약 우리가 연옥에 있는 영혼을 돕고 싶다면 그들을 위해 우리는 묵주기도를 바쳐야 한다. 왜냐하면 묵주기도는 그들에게 대단한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라고 권고했다. 또한 우리는 묵주기도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구원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금세기의 마리아의 사도인 성 막시말리안 콜베 신부님의 일기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바치는 묵주기도의 횟수만큼 많은 영혼들을 구합니다."

성 클레멘스 마리아 호트바우어는 묵주기도로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특별한 사도직을 했다. 그는 항상 교황 비오 7세가 그에게 준 작은 묵주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실수로 그것을 잃어버려 몹시 화가 나 있었다. 한 수녀가 그 묵주를 찾아 그에게 돌려주었을 때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 묵주를 찾아줌으로써 당신은 죄인들의 회개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죄인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암송할 때마다 나는 그 영혼의 회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성 클레멘스는 그의 통회자들에게 죄인들과 오류에 빠져있는 이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많은 묵주기도로서 그를 도와달라고 말하는데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는 묵주기도에 의해 비록 문제의 영혼들이 30년, 혹은 40년 동안 성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더라고 성인이 원하는 회개를 항상 얻을 수 있었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님은 거룩한 묵주기도를 통해 나에게 또 다른 한 영혼을 주었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때마다 그의 얼굴은 빛이 났다.


묵주기도를 통한 영적인 부활

모든 도시들과 지방들은 거룩한 묵주기도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영적인 봄철을 맞이한다.
성모님이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 성모님은 되풀이해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권고하셨다. 성인들은 주의깊게 기도를 위한 모든 기회를 샅샅이 찾았고 기도하는데 거의 언제나 지치지 않았다. 그들은 다음의 성서구절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늘 기도하십시오." (1테살 5,17)

그러므로 성인들의 모범을 따라 갑시다. 성인들은 예수님과 마리아께로 우리를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교회헌장 50항 참조).

(마리아 87호)


교황 비오 10세는 "시간전례를 포함한 거룩한 미사 다음으로는 거룩한 묵주기도보다 효과적인 기도는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5월 5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5,1-8>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



[오늘의 묵상]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쳐 내신다.’
열매는 기쁨의 신앙생활입니다. 오랫동안 믿어 왔는데도 여전히 즐거운 신앙이 아니라면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성당 다니는 이유가 아직도 막연한 의무감이라면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생명입니다.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약하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물과 양분을 잎과 줄기로 올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의 역할이 없으면 시들해지고 맙니다. 기쁨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뿌리 또한 ‘아무도 모르는’ 적선이며, 기도이고, 선행입니다. 이러한 실천이 없었기에 허전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자선을 무외시(無畏施)라 했습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행위를 가장 높게 평가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좋아지면, 주님과 맺는 관계도 좋아집니다.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분의 도우심 안에 머무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겁주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내세우는 지도자는 ‘바른 지도자’가 아닙니다. 남의 두려움을 없애 주면, 자신의 두려움도 언젠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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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 5월 6일 ] 성시간(聖時間) / 사제의 해 전대사 / [복음과 묵상]
사랑하올 성모님과 묵주기도 전파 / [복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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