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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동반자 / [복음과 묵상]
이름
  운영자  (Homepage) 작성일 : 2010-04-29 09:08:10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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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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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


인생의 동반자


사람은 평생 누군가를 동반자로 만나 같이 길을 걷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영원하신 하느님을 인생의 동행자로 삼고 그분의 인도와 도움을 받으며 성공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의 운동회 경기 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비를 뽑아 달리기를 하는 장애물 경주로 두 명의 선수가 나갔습니다. 한 아이는 육상선수였고 또 다른 아이는 키가 가장 작은 볼품없는 아이였습니다.
“땅!” 하는 신호음과 함께 육상선수인 아이는 먼저 모든 장애물을 통과하고 앞에 놓인 접혀진 종이를 입술로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관중석을 향해 쏜살같이 뛰어가 접힌 종이를 펼치는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접힌 종이 속엔 ‘할머니’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아무리 잘 뛰어도 할머니가 뛰질 못하는데 어쩌겠습니까? 결국 그 친구는 다 이긴 경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키가 작은 아이는 종이를 펼치는 순간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체육 선생님’이란 글자가 뚜렷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 손을 잡고 뛰었지만, 아이의 걸음이 시원찮아 체육 선생님은 “얘, 안되겠다. 내 등에 업혀라” 하시고 그 아이를 들쳐업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체육 선생님과 키 작은 아이가 1등으로 들어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인생이라는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장애물과 고비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빨리 가고 못 가고는 내 소원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함께 뛰는 경주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뛰시다가 내가 시원찮으면, “얘, 안되겠다. 내 등에 업혀라” 하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만 믿고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경주에서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든 걱정할 게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증언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며, 보호하고, 인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 41,10)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저으며 새끼들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들어 올려 깃털 위에 얹어 나르듯 주님 홀로 그를 인도하시고 그 곁에 낯선 신은 하나도 없었다.”(신명 32,11-12)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1요한 5,18)

“이분께서 하느님이시다.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이분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시편 48,15)

신자 여러분! 이 시간 영원히 여러분과 동행할 살아계신 하느님을 여러분의 삶 속에 모시겠다는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송시웅님)




[4월 30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14,1-6>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늘의 묵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스승님의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일생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며 헌신하셨지만, 돌아온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배신까지 겪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이용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 변명도 없이 억울함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 ‘제1처’의 가르침입니다.

신앙인 역시 이용당합니다. 여차하면 속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난하고 불평합니다. 억울함을 곱씹고, 보복도 생각합니다. 일종의 ‘저항’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호전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에게만 ‘악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억울한 느낌이 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려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신이 바뀌면 세상도 달리 보이는 법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삶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억울함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 보십시오. 눈물과 함께 바쳐 보십시오. 억울함이 십자가의 본질임을 깨닫게 됩니다. ‘분하고 분했던’ 일들이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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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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