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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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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한 그 당시의 신앙의 주인공을 만납니다.

관련자료: 성지순례(동영상) , 성지자료 , 성지순례기 1 , 성지순례기 2 , 성지


제목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신심의 본질 (120-134)
이름
  운영자  (Homepage) 작성일 : 2006-02-22 15:27:36  ;


[마리아께 대한 완전한 신심의 본질]

120. 우리의 완덕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봉헌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심 중에서 가장 완전한 신심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르며,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이다. 그런데 모든 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따라서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예수님께 가장 잘 봉헌하게 하고 친밀하게 일치시키는 신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대한 온전한 신심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봉헌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도 봉헌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치려는 신심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세례 때에 발한 서약과 맹세를 갱신하는 것이다.



마리아께 대한 완전하고 전적인 봉헌


121. 그러므로 이 신심은 마리아를 통하여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기 위해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데에 있다. 우리가 마리아께 바쳐야 하는 것은 첫째, 우리의 몸과 몸의 기능, 둘째, 우리의 영혼과 영혼의 능력, 셋째, 우리의 외적인 재화, 즉 현재와 미래에 갖게 될 모든 물건 및 재산, 넷째, 우리의 내적이고 영적인 재화,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든 공로와 덕행과 선행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질서에서 그리고 은총의 질서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마리아께 티끌 하나 남김없이 전부 마쳐야 한다. 즉 한 푼의 돈, 머리카락 한 오라기, 손톱만한 작은 선행도 우리는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또 우리가 이러한 희생과 봉사를 한다 하여 마리아에 의해 마리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영예 이외에 그 어떤 다른 보수를 요구하거나 희망해서도 안 된다. 설사 마리아가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너그럽고 자애로운 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럴 리 없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무조건 바쳐야 한다.


122. 이런 관계에 있어서 소위 우리가 행하는 선행에 있어 두 가지의 관점에 주의해야 한다.
즉 보속과 공로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선행으로 죄벌을 없이하고 새로운 은총을 얻는 보속적 또는 청원의 가치와 우리의 선행으로 은총을 증가시키며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되는 공로적 가치, 이 두 가지이다.
그런데 마리아께 대한 우리의 봉헌에서는 보속적 또는 청원의 가치와 공로적 가치를, 즉 우리의 모든 선행의 보속과 공로를 마리아에게 바치는 것이 된다.
우리가 마리아에게 우리의 공로, 은총 및 덕행을 드리는 것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왜냐하면 우리의 공로, 은총 및 덕행은 양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느님 대전에서 우리의 보증인으로서 당신의 공로를 우리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말하겠지만, 그것은 마리아께서 우리의 은총과 공로를 우리를 위해서 보관하시고, 증가시키고, 아름답게 꾸미시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우리가 보속과 선행을 드리는 것은 그것을 마리아께서 당신이 원하는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큰 영광을 위해서이다.


123.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결과가 나온다.
즉 첫째로, 우리는 이 신심에 의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다른 신심으로 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드리는데,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드리기 때문에 완전하게 드린다.
다른 신심은 우리의 시간과 선행과 보속과 희생의 일부분만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지만 이 신심으로는 우리의 내적 재산과 우리가 매일매일 실천하는 선행을 얻는 보속으로 분배하고 처분할 권리까지도 마리아에게 위탁하고 봉헌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어느 수도회에도 없는 것이다. 수도회에서는 청빈의 서원으로 재산의 행복을, 정결의 서원으로 육체의 행복을, 또 순명의 서원으로 자신의 의지를, 때로는 봉쇄의 서원으로 육체의 자유를 하느님께 드린다. 그러나 자기 선행의 가치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하느님께 바치지는 않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특히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 공로와 보속의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124. 둘째로는, 이러한 신심의 방법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을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바친 사람은 자기 선행의 가치에 대해서 더 이상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마음대로 갖지 못하며, 그가 겪는 모든 것,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이미 마리아의 것이 되어 마리아는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또 당신 아드님의 가장 큰 영광을 위하여 이를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마리아에게 바쳤다고 해서 현재나 미래의 자기 신분에 따르는 의무에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예컨데 어떤 사제의 의무에 있어서 그가 바치는 미사의 보속적 가치 혹은 대신 간청하는 기도의 가치를 어느 특정된 개인의 의향에 맡기는 것은 사제의 의무이다.
의무라고 해서 이 신심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신심에 의한 봉헌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뜻과 신분상의 의무가 따르는 범위 안에서 실천되기 때문이다.


125. 셋째로, 그 결과는 우리는 자신을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께 동시에 봉헌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고 우리가 당신과 결합하기 위한 완벽한 수단으로서 마리아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전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은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우리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그분은 우리의 최종 목적이시기 때문이다.



완전한 봉헌은 세례 때 했던 서약의 완전한 갱신


126. 나는 이 신심이 세례 때 한 약속의 완전한 갱신을 뜻한다는 것을 이미 말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세례 전에는 악마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악마의 노예였다. 그러나 영세 때에 자기 입으로 혹은 대부 대모의 입으로 마귀와 마귀의 행실과 유혹을 끊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 또는 최고의 주권자로 삼아 자신을 사랑의 종으로서 완전히 바칠 것을 하느님께 엄숙하게 맹세하였다.
마리아께 드리는 완전한 봉헌을 통하여서도 그와 같은 것을 우리는 우리는 행한다. 봉헌 기도문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귀와 세속과 죄악과 자기 자신을 끊어 버리고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이다. 아니 이 신심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다. 왜냐햐면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른 사람, 즉 대부 대모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고 그래서 대리인에 의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나 이 완전한 봉헌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또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 떼에는 적어도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지 않고 자기 선행의 모든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부 바치지 않으므로 세례 후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를 적요하거나 자신을 위하여 보존할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127.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람들이 세례 받을 때 마귀와 마귀의 유혹을 끊어 버릴 굳은 약속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약속은 가장 중대하고 절대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겠다고 서약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서원이다." 교회법 학자들도 세례 때의 서약은 예수 그리스도께 약속한 것을 지키고 있는가? 세례 때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습관적인 망각 속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안 세례 때에 발한 약속과 맹세를 잊어버리고 세례에 의해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128.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던 까닭에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소집된 세느 공의회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도덕적 타락의 근본 요인이 세례 때의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알지 못하고 사는 데에 있다는 판단을 내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 공의회는 이러한 병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영세 때에 약속한 바를 새롭게 갱신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결정지었다.


129. 이 공의회의 결정을 거듭 강조한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리 문답도 본당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마치 노예처럼 예속되어 있으며 봉헌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믿도록 지도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본당 신부는 신자들이 우리 구세주이시요 주님이신 분께 노예나 다름없이 영원히 헌신하고 봉헌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일임을 알도록 이치를 들어 권장해야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 교리 문답 제1편 3장 2절 15항)


130. 그런데 공의회들과 교부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리스도인들의 난잡한 행실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례 때 약속한 의무를 기억하게 하고 그때의 서약을 갱신하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면, 마리아를 통해 주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이 신심의 실천으로 그것을 더 완전하게 함은 어떠한가? 내가 "완전하게" 라고 말하는 것은 주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함에 있어서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완전한 방법이 동정 마리아를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31. 이 신심이 다른 어떤 새로운 것이라고 반대할 수는 없다. 이 신심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공의회들과 교부들 및 과거나 현재의 많은 학자들이 주님께 대한 봉헌과 세례 서약의 갱신을 옛날부터 실천하던 것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장려해 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이 또한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패와 그에 따라오는 영원한 멸망의 근본 원인이 이 신심 실천에 대한 망각과 무관심에서 오기 때문이다.


132. 어떤 사람들은 이 신심으로 우리의 모든 선행, 기도, 고행 및 자선의 가치를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 바침으로써 우리는 부모나 친구 및 은인들의 영혼을 도울 수 없게 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첫째로, 우리들이 무조건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바쳤다는 이유로 부모나 친구 및 은인들이 손해를 입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과 마리아의 능력과 자비를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과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영적인 작은 자산이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부모와 친구, 은인들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둘째로, 이 신심은 그 적용이 마리아의 손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도록 이끌어 갈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부자가 왕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하여 자기의 전 재산을 바친 뒤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기 친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하고 왕에게 보다 더 큰 신뢰를 가지고 청하는 것과 같다. 왕은 자기를 공경하기 위해서 가난해지고, 자기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털어 바친 이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경우도 이와 같으니, 예수님과 마리아께서는 감사하는 일에 있어서 절대로 누구보다도 못하지 않을 것이다.


133. 혹자는 "만일 내가 나의 모든 선행의 가치를 마리아에게 바쳐 마리아가 원하는 사람에게 자유로이 그것을 분배한다면 아마 나는 오랫동안 연옥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반문은 하느님과 마리아의 너그러우심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일보다 하느님의 일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더 드릴 수 없을 정도로 남김없이 하느님께 바치며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고 그 나라를 얻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바친 열렬하고 관대했던 영혼이, 다른 영혼들보다도 더 아량이 많고 욕심이 없었던 것으로 인해 저 세상에서 더욱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모순이 있을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다음에 말하겠지만, 우리 주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이러한 영혼에 대해서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자연계와 은총계 및 영광계에 있어서 대단히 너그러우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4. 이제부터 이 신심을 정리하게 된 이유와 이 신심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생기게 되는 놀라운 결과와 이 신심의 외적 실천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마리아께 대한 올바른 신심의 표지 (105-119)
완전한 봉헌에 대한 동기들 (13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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